그날 이후, 1화
안녕하세요, 유라초이입니다.
저는 어머니께 간이식을 해드린 생체 간이식 공여자입니다.
2024년 06월 25일 08:30 삼성서울병원, 집도의 김종만 교수님께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상태는 간수치가 좋지 않은 것보다는 오래된 간경화로 인한 간문맥이 망가졌고 간문맥을 재건할 수도 없는 상태여서 신장 쪽 혈관과 연결을 했습니다. 저는 우간절제술을 통해 우간 66.7%를 절제하였고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2024년은 저에게 참 많은 일이 있던, 그리고 그만큼 힘이 들었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견뎌내야만 하고, 이겨내야만 하는 일들이 아직 만연한 상황이랍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긍적적인 저는 해내고야말겠다는 생각과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어머니 치료에 전념하고 있답니다. 기억이 잊혀지기 전에,,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여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인 우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적어 내려갑니다.
2024년 3월 저는 중국 WUXI 지역에 회사 프로젝트 업무로 인해 출장중이었는데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새벽 1시에 로밍으로 걸려온 작은누나의 다급하고 간절한 목소리에 잠이 깨어 희미해져가는 어머니의 목소리 "졸려, 아들아, 자꾸만 잠이와, 왜이렇게 잠이 쏟아지니" 라는 말과 함께 제 정신은 더 또렷해졌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이대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 구급차에 타 있던 작은누나는 그래도 침착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울먹이는건 어쩔 수 없었죠.
다행히 어머니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잃지 않으셨고 그 상태로 걸어서 Brain C.T를 찍으러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 아버지, 큰누나, 작은누나, 큰 매형, 작은 매형 새벽에 다들 긴급히 서울이대병원으로 모였었죠.
'바로 한국으로 가야겠다.' 오로지 이 생각 뿐이 었습니다. 호텔방에서 캐리어를 꺼내 짐을 마구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병원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상사 분들께 너무 늦은 시간이라 카톡을 남기면서 말이죠.
다행히도 의료파업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대서울병원에 당직의로 계셨던 분이 신경외과 뇌출혈 수술이 가능한 의사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셨던 말이, "지주막하출혈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재 터진 혈관 쪽에 혈전 같은게 임시적으로 막고 있어 출혈이 추가적으로 출혈이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어떻게 재출혈이 일어날지 모르니 바로 수술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바로 코일색전술 시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5시경, 끝난 수술. 그리고 바로 중환자실로 들어간 어머니. 가족들과 이야기를 끝에 우선 중국에 남기로 했습니다. 중환자실 면회가 자유롭지 못하고 하루에 20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우선 누나들과 아버지가 면회를 하면서 어머니의 경과를 지켜보고 저는 추후에 들어와서 전략적으로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직장인이다보니 연차와 휴가로부터 모두 다 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로 협의를 했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업무를 마무리 할 때쯤까지는 누나들이 번갈아가면서 어머니 면회를 가서 하루에 딱 20분만 허락된 시간에 울고 불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동생 걱정한다고 영상 통화, 사진, 영상 등을 찍어 보내주기 반복이었습니다. 코일색전술 후 1주일동안은 어머니는 의식이 있었고, 분명 3월9일 밤 한국에 도착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통화로 "엄마, 내일 내가 바로 면회갈게. 조금만 더 참고 엄마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기뻐. 엄마 늦게와서 미안해", 어머니도 저에게 "응, 한국 도착했어? 응 그래 조심히와, 엄마 괜찮아."라는 대화와 함께 다음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